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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더 이상 강사들의 비극을 묵과할 수 없다!

만인만색 2019. 12. 18. 10:41

 

2019년 12월, 또 한 명의 비정규직 강사가 세상을 등졌다. 故 김정희 강사이다. 그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전수교육조교다. 김정희 강사는 그간의 활동경력을 인정받아 1998년부터 20년 동안 한국 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러나 이른바 ‘강사법’ 시행 이후 석사학위 이상 기준에 미달된다는 이유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측으로부터 강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강사법, 즉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2010년 조선대 강사 서정민의 비극적인 선택이 계기가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또 다시 반복된 김정희 강사의 죽음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결과이다. 따라서 현상적으로만 본다면 이번 사태는 강사법의 여파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을 강사법의 탓으로 돌리는 기조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사태의 원인은 강사법이 아니다. 법적으로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강사란 연구실적 1년 이상, 교육경력 1년 이상, 합계 2년 이상의 연구교육경력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김정희 강사에게 해고통지를 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임용규정 제4조(자격) 1항에도 “강사는 교육 및 연구(실기)경력이 대학졸업자는 2년 이상, 전문대학 졸업자는 3년 이상인 사람으로 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라는 신분과 교육경력이 20년을 넘은 김정희 강사는 학위와 무관하게 강사자격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사건의 본질은 ‘강사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측이 ‘강사법’을 핑계로 1명의 베테랑 강사를 해고한 행위에 있다.


비단 한국예술종합학교만의 문제일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강사법’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대학의 야만적인 구조조정에 있다. 강사들이 대학 전체 강의의 절반 가량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강사인건비는 대학 전체 예산의 5% 내외인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각 대학은 강사법을 핑계로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강좌수를 축소하거나 대형 강의를 확대하고 전임교원 강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강좌가 사라지고 강사들이 대량으로 해고되는 것은 물론이다.


김정희 강사의 비극은 이와 같은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육이 우선이 아닌, 비용절감만을 우선에 두는 대학운영과 비인간적인 고용구조를 혁신하지 않는 한 강사들을 비롯한 대학 비정규교원의 미래도 없다. 더 나아가서 미래 고등교육의 주역이 되어야할 석박사 과정생들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고등교육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실은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우선 각 대학은 우선 강사법 전후 아무 명분도 없이 축소한 강의들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 강의 집중도가 극도로 저하되는 100명 이상의 대형강좌를 폐지하고, 해당 강의를 소형 강좌로 재편하여 강의의 양적회복과 질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수, 강사, 학생 등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를 마련하여 학내 구성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강좌들을 확보해야 한다.


신진연구자·대학원생들의 네트워크인 만인만색에서는 이러한 비극이 단순히 강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수·대학원생·학부생 등 대학과 관련된 모든 주체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들의 미래와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이러한 비극적인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고, 대학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하나, 대학은 강사법 전후로 벌어졌던 폭력적인 구조조정을 즉각 중단하고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라! 

하나, 교육부는 이런 대학의 야만적인 행태를 더 이상 묵과하지 말고 엄중히 단속하라!


故 김정희 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9.12.17.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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