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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8) 몰염치한 문명교육재단은 양심적 교사에 대한 보복 징계를 철회하고 학교 구성원과 시민에게 사과하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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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8) 몰염치한 문명교육재단은 양심적 교사에 대한 보복 징계를 철회하고 학교 구성원과 시민에게 사과하라!

만인만색 2024. 2. 7. 01:08

[성명] 몰염치한 문명교육재단은 양심적 교사에 대한 보복 징계를 철회하고 학교 구성원과 시민에게 사과하라!

경악할 일이다. 경북 경산에 소재한 문명교육재단(이사장 홍택정)은 2017년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에 반대했던 문명고등학교 교사 5명에 대한 보복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홍택정 이사장은 “10년이 지나도 해교 행위를 했으면 징계할 수 있다”며 “(국정) 교과서가 잘못됐다는 본질적인 반대는 없”었다고 밝혔다. 참담한 가슴을 억누르며 홍택정 이사장에게 묻는다. 정녕 국정 역사교과서의 본질적 문제를 모르는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2015년 겨울부터 전국의 역사학자, 역사교사, 시민단체들이 문제제기한 것에 일부러 눈 감은 것은 아닌가.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는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교육부의 밀실 행정에 맞서 반대 의견서 제출운동을 전개했다. 교육부는 32만 건에 이르는 반대 의견서를 묵살하고, 무더기 찬성 의견서를 조작하고 이를 위해 명의를 도용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시민·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국정화 강행의 “반민주성, 비교육성, 몰역사성”을 비판했고, 학계를 대표하는 수십 여 학회들은 물론 각 대학 연구자까지 반대 목소리를 모았다. 그 결과 교육부는 집필자를 공개하지 않는 ‘복면집필’의 부끄러움까지 저질렀다.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는 여러 번의 공개 성명에서 단일한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려는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해치는 행위라 천명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할 법한 발상이라 비판했다. 우리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단체가 아니다. 그 어떠한 정권이라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다면 앞장서 반대할 것이다.

문명교육재단은 ‘교육재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작태를 보이고 있다. 2017년을 되돌아보라. 2월 문명고등학교는 학생·교사·학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국 유일의”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강행했다. 교사들은 양심과 전문성에 기반하여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에 반대했다. 그러자 경북도교육청은 연구학교 지정 요건이었던 “교사 80% 동의” 조항을 삭제하는 꼼수를 부렸다. 문명고 재학생과 학부모는 연구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섰다. 입학 예정이었던 학생 5명은 국정 역사교과서로 배울 수 없다며 학교를 떠나야 했다. 학부모들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견을 무시한 국정 교과서를 즉각 철회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일인시위에 나서야 했다. 재단이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하는 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자 학생회는 직접 나서 “선생님들에 대한 불이익은 비교육적, 비민주적 행위”라고 재단을 비판했다. 3월 대구지법은 학부모들이 낸 소송에 문명고등학교 연구학교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경북도교육청은 항고했지만 대구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도교육청은 연구학교 지정을 철회해야 했다.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지시 2호로 국정 역사교과서의 최종 폐기를 결정했고, 교육부는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하여 12월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원에 대한 불이익 처분을 취소했다. 당시 문명고등학교 김태동 교장은 연구학교 지정 취소에 대해 학부모·학생의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묻는다. 2017년 연구학교 지정에 반대했던 재학생과 입학식마저 파행으로 맞이해야 했던 신입생들이 졸업하자 졸속으로 보복 징계를 시도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방법인가? 문명고등학교의 교훈은 지(智), 덕(德), 용(勇)이다. 이 교훈은 2017년 연구학교 지정 반대에 앞장섰던 학생·교사·학부모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반면 해교 행위는 2017년 연구학교 강행 신청, 2020년 보복 징계를 시도하는 문명교육재단에 어울리는 말이다. 문명교육재단은 몰염치를 버리고 보복 징계 시도를 철회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과 시민들에게 낮은 자세로 사과하고 진정한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현 사태는 관내 교육기관을 지도·감독해야 하는 경북도교육청의 책임이기도 하다. 2018년 새로 부임한 임종식 교육감은 “교육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주인이 되는 따뜻한 교육혁명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 비춰 경북도교육청은 문명교육재단의 “해교 행위”와 학생, 학부모, 교사에 대한 기만행위를 책임지고 감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했던 수많은 시민과 역사학계에 호소한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망령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현 사태를 특정 지역, 특정 학교만의 문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권력자들은 항상 역사와 역사 교육을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 이에 맞서는 운동은 곧 민주주의의 외연을 확장하고, 우리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문명교육재단의 몰염치한 작태에 더 관심을 갖고 비판해야 할 충분한 이유다.

2020년 3월 18일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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