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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지금 당장’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웃을 생각한다

만인만색 2017. 9. 7. 01:15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지금 당장’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웃을 생각한다.


  우리는 매년 3월 1일이 되면 정부의 공식기념식부터 각종 지자체의 재현행사, 언론과 TV특집 프로그램 등으로 1919년의 3·1운동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는 노래부터 교과서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3·1운동의 의미를 배웠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문에서 항상 ‘3·1운동’을 강조하였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3·1운동은 일제 식민통치를 기억하는 방식이자 현재의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였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전개된 대규모 대중운동이었다. 3·1운동에 참가한 조선인의 수는 적게 잡아도 약 50여만 명이다. 많은 숫자 뿐 만이 아니다. 3·1운동에는 지식인-성인-남성만 참여하지 않았다. 종교인과 학생, 상인, 농민, 빈민, 기생 등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가진 배경이 달랐어도 자신들이 느꼈던 민족적 차별을 제 위치에서 만세운동으로 표출하였고, ‘민족’이라는 단일한 이름 아래에서도 형형색색으로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민족독립운동인 동시에 사회적 차별과 소외에 대한 문제를 표출하는 공간이자 운동이었다.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는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한국 사회가 잊어버린, 역사가 지워버린 이웃들과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장애인과 성소수자는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록하며 기억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유력 대선후보는 보수 기독교단체를 방문하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거부하고,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성애라는 성애의 존재는 애초에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이는 민주통합당의 2012년 대선공약(차별금지법 제정)마저 후퇴시킨 것이다. 또한 그는 공식석상에서 “인권에 대한 전반적 의식이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인권의식은 정치공학적 계산기 놀음으로 높아질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인권은 곧 '사람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인정'이며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는 2015년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여러 활동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라 경고하였고,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삭제할 것이라 우려하였다. 사람의 얼굴이 사라진 역사교과서는 교과서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2016년 1월 창립총회에서 운영원칙으로서 “더 많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식”에 합의하였다. 회칙에는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형태·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에 의하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였다. 이는 우리가 지향하는 역사학의 방향이자 한국사회가 이웃을 기억해야 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양성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성평등포럼에서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외치던 레즈비언 활동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같은 자리에서 그녀의 항의를 지지하였고, 광화문 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였던 장애여성들의 투쟁을 기억한다. 한편 포럼에 참석한 청중들 중 일부가 연호한 “나중에"는, 그 자리의 활동가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고 유보하는 행위이다. 그 활동가의 목소리는 역사 속에서 불의에 항거하며 함께 싸우고, 함께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또한 촛불집회와 탄핵정국이 제도정치 개혁에서 더 나아가 내 일상까지 변화하기를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3·1운동과 그 이후 전개된 이 땅의 역사는 언제나 오늘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었으며, 이는 지금 여기서 만들어지는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는 민족적 항쟁일이자 반차별운동을 상징하는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지금 당장”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기억하고 지지할 것을 정치권과 한국사회에 요청한다.


2017년 3월 1일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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