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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도, 민주주의에도 배치되는 윤 정부의 이념정치 - 정종원 (2023.9.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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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도, 민주주의에도 배치되는 윤 정부의 이념정치 - 정종원 (2023.9.26)

만인만색 2024. 2. 6. 17:00

 

경향신문 기고

 

 

최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기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김좌진·이회영·지청천·이범석·홍범도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동상 치우기는 독립운동가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육사의 흉상 이전 논란이 진행되는 와중에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국회의사당에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창립을 축하한 ‘문화자유행동’이란 단체의 대표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자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역사적 위인들의 동상을 이전하려고 한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역사와 조선시대의 역사는 단절되어야 할 전통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정부와 여당의 행보는 1960~197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대혁명은 중국공산당이 중국의 전통문화가 사회주의 이념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문화유산을 파괴했던 ‘비극’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위해 역사적 전통을 단절하려는 행위는 ‘21세기판 문화대혁명’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 정부의 ‘21세기 문화대혁명’은 이념적으로 심각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은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는 정치 체제라는 의미와 더불어 반독재와 반공을 표방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질적 지향은 반공주의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반공주의를 강조했듯이 정부·여당은 반공주의의 상징인 이승만 전 대통령을 띄우기 위해 이승만 기념관 건립 예산으로 460억원을 책정했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일 뿐 비전과 지향점이 모호해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반공주의라는 좁은 틀에 가두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됐다. 그야말로 ‘자유’의 적(敵)은 공산주의를 표방한 독재든 그렇지 않은 독재든 모든 독재정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0년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이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박정희의 ‘반공독재’를 옹호하는가, 아니면 반공독재를 비판하는 ‘반독재’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념적으로 모순적이다.

국가정체성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만으로는 재조립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정체성으로 만들려 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하려 한다. 국가정체성은 보편적 가치도 담겨야 하지만,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특수성과 고유성이 있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영국을 비롯해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는 국가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다. 국가정체성은 그런 국가들과 달리 ‘한국’이라는 특정한 국가를 위한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한국의 국가정체성은 역사와 전통을 현대 민주주의와 결합한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 1948년 이전의 한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한·미·일 동맹, 더 정확히는 한·일 동맹의 장애물이 되는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성취를 폄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몰역사적인 행태는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독재자를 추앙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배치되며,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념정치는 ‘자유민주주의’를 해친 역사적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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