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 김효성 (2016.11.25) 본문

학술활동/기고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 김효성 (2016.11.25)

만인만색 2017. 9. 7. 02:06



: 김정근 작, <그림자들의 섬>



 한진중공업이라는 사업장에서 살아왔던 예닐곱의 노동자들의 등장하면서부터 이 영상은 시작된다. 크레인 고공 농성으로 유명세를 탔던 김진숙 씨를 비롯해 몇 명의 노동자들은 한진중공업의 입사에서부터 노동조합 활동,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에 대한 회한, 그리고 현재 정리해고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까지를 시종일관 담담하게 풀어낸다.


 자연스레 나는 2000년대 초반, 대학생으로서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노동계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참가했던 몇 번의 옛 기억들을 끄집어보았다. 정말 단순했던 거 같다. 단순했지만 정작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감을 잡아볼 수나 있었던 그때가 문득 기억난다.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나 역시 참가, 노동계의 투쟁에 조금 참가했다는 일종의 면피성 안도감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그때 아스팔트를 뛰어다니며 열사 추모제, 그리고 유인물을 뿌리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정리해고 시도에 대해 나름 문제의식을 가졌던 그 때를 다시금 복기할 수 있는 영상이 바로 <그림자들의 섬>이었다. 


 영상에 나오는 노동자들이 하나같이 지적했던 점들이 있다. 첫째는 압도적인 영도조선소의 규모였다. 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점은 굳이 이 지면을 빌리지 않아도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고도성장의 한 자락에 조선업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 노동자들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둘째, 한진그룹, 한진중공업이라는 ‘대기업’의 일원으로서 가졌던 개인사적 긍지, 자부심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하면, 우리가 사회과학 서적, 이론서들에서 접했던 노동자들의 ‘전투성’과는 다소 다른 형태였다. 이들의 전투성은 언제까지나 노동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이었고, 그 정체성으로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점까지 드러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혹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 부분이 <그림자들의 섬>이 호평 받았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이들은 대기업의 ‘생산노동자’ 이전에 한 ‘인간’이었다. 앞서 언급한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에 대한 회한을 풀어낼 때, 그리고 김진숙이 오랜 기간 고공 크레인에서 장기 농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엄혹함, 차가움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물어보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기실 노동자들의 일상, 다시 말해 이들의 일상에서 구성하고 증언하는 ‘내면’을 <그림자들의 섬>은 시종일관 카메라 렌즈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편집 과정에서, 혹은 증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왜곡’을 막기 위한 장치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언젠가 혹은 어느 쯤에서 또 다른 ‘한진중공업’ 같은 곳에서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육성’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진중공업의 문제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등한시했던,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일’이 아니었다고 단정한 우리 내면에 대한 일종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김진숙 씨가 영상 말미에서 한진중공업 내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던 자기 내면의 ‘게으름’에 대해 자책하는 장면은 내가 꼽는 이 작품의 백미다. 노동의 주체인 사람이 현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인지되고 취급되는가에 있어 <그림자들의 섬>은 우리에게 물어보고 있다. 국가경제, 경제성장,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지표들에 함몰되고 있는 현 한국사회에 대해 우리 스스로의 자아성찰을 물어보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계급’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계급의식’이 부재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동의 주체로서 인간다움을 되찾길 바라는 뜻이라는 점은 지나친 해석일까? 영상을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내 생각이었다. 


(<만인만색 뉴스레터> 8, 2016.11.2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