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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29) 윤석열 정부는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마라. - 카이스트 졸업식 사태 및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 일괄사퇴에 대한 우리의 입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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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29) 윤석열 정부는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마라. - 카이스트 졸업식 사태 및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 일괄사퇴에 대한 우리의 입장

만인만색 2024. 8. 24. 13:45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헌법에 명문화된 ‘자유’를 기계적으로 해석해선 안된다. 헌법적 자유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실현되는지, 소외된 곳 없이 ‘자유’의 온기가 퍼져나가는지 냉철하게 감시하고, 뜨겁게 논쟁해야 한다. 공기처럼 누리는 ‘자유’는 지난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사람들의 투쟁과 피, 땀, 눈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정신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앞세웠던 윤석열 정부는 아연실색케하는 소식만을 전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에서 대통령 경호처는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에 항의하는 졸업생 신민기 씨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연행하였다. “R&D 예산 복원하라”는 외침이 장내에 퍼지기도 전에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했고, 그는 경호원들에게 사지를 들려 쫓겨나야 했다. 그의 주장은 매우 정당했다. 현 정부는 외환위기 때도 삭감하지 않았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였다. 대통령의 ‘카르텔’이라는 말 한마디에 연구개발 예산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의 예산이 일괄 삭감되었다. 예산 삭감의 고통은 학문생태계의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대학원생 및 대학생 연구원에게 직면한 위기이다. 학문 후속세대의 생계가 위협받고, 연구기회가 박탈되고 있다. 학문 후속세대를 고사시키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앞서 연구자 사회와 피해를 직접 받는 대학원생에게까지 그 의견을 구했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 이후에 정부는 어떤 예산이 유용되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항의 발언에 재갈을 물렸을 뿐이다. KAIST 대학원생인권센터와 재학생 및 교직원 4,456명은 KAIST 졸업식 폭력진압 사건을 “대통령 및 경호처가 물리력을 행사한 과잉대응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KAIST 동문 1,136명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에서 “윤 대통령과 경호처가 피해자의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지지하며,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뚤어진 자유관을 비판한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 물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국회의원은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가 경호원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들려 나갔다. 대통령실은 이를 ‘퇴장조치’라고 말했는데,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내쫓는 것이 ‘퇴장조치’인가? 한 달 사이에 같은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난 것은 우연인가? 우리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과도한 행정력으로 규제하고, 물리력으로 인신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것을 ‘폭력’이자 ‘탄압’이라 부른다. 전두환 정부에서 대통령의 심기까지 경호한다고 말했던, ‘심기 경호’의 창시자 장세동 전 경호실장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은 자신의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전철을 밟으려는 것인가? 대통령은 경호처의 폭력·과잉 대처에 묵인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수없이 말했던 ‘자유’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통령 취임 선서에 포함된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은 경호처의 폭력진압 속에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우리는 2월 26일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해야 했다.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 11인이 일괄사퇴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기억과 전망>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전문학술지로 지난 22년간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국제 민주주의 운동에 연대하고자 노력하였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였지만 유수의 연구자들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편집권이 보장된 전문학술지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게 한국민주주의연구소와 <기억과 전망>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운영이 편향되었다며 비난하더니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기억과 전망>의 일부 내용을 핑계로 강력한 인적 쇄신을 요구하였다. 짜맞춰진 공격의 결과, 2024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예산은 대거 삭감되었고, <기억과 전망>을 간행하던 한국민주주의연구소는 해산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학문 연구에 대한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는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쉽게 말해, 정부에서 민주주의 연구의 가이드라인을 작성한다는 의미이다. ‘정부가 허락한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라는 편협하고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편집위원회는 일괄사퇴 입장문에서 “사퇴라는 최후의 수단을 통해 공공기관의 일방적 논의와 의사결정방식이 학문의 자유와 학문공동체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비판하였다. 우리는 편집위원회의 입장을 지지하며 더 나아가 “‘편집권 없는 민주주의 학술지’ 운영이 가능한가?”라고 묻고자 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아래에서 윤색되고 편집된 민주주의는 더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과 권위에 가려졌던 역사적 사건들을 발굴하고, 현대 민주주의의 외연과 내용을 확장시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연구의 본령이며,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기관과 학술지가 지녀야 할 태도이다. 삶으로서 ‘자유를 향한 투쟁’을 살아냈지만 ‘자유’라는 말도 남기지 못한,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연대가 민주주의 학술지로서 <기억과 전망>의 방향이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논란’을 구실로 하여, 행정력과 예산 삭감을 수단으로 하여, 민주주의 연구기관과 학술지를 억압하고 있다. 정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함”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갖고 있는지 되물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며,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재갈을 물리고 과도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이를 탄압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섣부른 감세 정책과 역대급 세수 펑크, 정치적 레임덕이 맞물리며 현 정부는 예산 삭감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는 현실적이지 않으며 정부 무능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행정관료의 집행은 편향적이며 정책 대상인 사람들에게 폭력적이다.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면 우선순위를 둘러싼 의견 교환과 논쟁이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며, 언제든지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회수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에 우리는 ‘자유’를 억압당한 사람들의 편에 서며, 다음의 내용을 요구하고자 한다.


1.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1.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은 반헌법적 과잉경호에 책임지고 사퇴하라.
1.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반민주적 조직 운영에 책임지고 사퇴하라.


2024년 2월 29일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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